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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음악

한국고전음악 범패

by 짱똘이다 202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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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음악 범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음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감동과 위로를 주는 예술의 하나이다. 특히 음악은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그중에서도 불교음악인 "범패"는 여타의 다른 음악과는 조금은 다르게 복잡한 세상을 잊게 하며 깊은 정적인 평화를 안겨주는 특별한 음악으로서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범패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사찰이미지

 

범패란 무엇인가?

범패는 한국의 불교음악으로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뜻은 "인도의 소리"라는 뜻으로 전에는 불교음악을 가리켜 범음, 어산 등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현재는 범패로만 부른다.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추정되며, 장단이 없고, 단선율로만 이루어져 있고, 종교음악인 까닭에 소리를 내는 태도부터가 경건함이 있다. 고요하고 정갈한 마음과 자세로부터 비롯되어 무아의 경지에서 소리를 내야 하는데, 장단 고저조차 없이 느릿느릿 이어지는 소리는 청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범패의 멋과 특징

범패는 서양의 종과는 달리 맑고 우아한 소리가 끝없이 퍼져 나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단이 없고 단선율로 되어 있으며,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소리를 내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범패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하는 음악과 민간인에게 포교를 하기 위한 음악이 있으며, 각각의 재에 맞게 다양한 곡들이 존재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지내는 상주권 공재, 이보다 큰 규모의 시왕각배제, 본인 사후의 극락왕생을 비는 생전예수제,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재, 대규모 불교의 재인 영산재 등 다섯 가지 재에 주로 범패가 쓰인다. 

 

범패의 역사와 전통

범패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더욱 널리 성행했습니다. 숭유억불정책을 그 근간으로 삼은 조선시대 조차는 범패승들이 활약하였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1년 사찰령으로 조선인 승려의 범패와 작법이 금지되어, 쇠퇴하였습니다. 현재에는 문화재로서 간신히 보존되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불교음악으로 남아있습니다.

 

범패의 예술적 가치와 영향력

범패는 불교의 교리와 함께 우리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복잡한 세상을 잊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 소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청자들에게 평온함과 깊은 정적인 평화를 선사합니다. 또한, 범패는 정악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가곡, 판소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 중 하나로 꼽히는 등 음악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범패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면 경상남도 하동에 있는 쌍계사의 진감선사 대공탑의 비문에 진감선사가 당나라에 갔다가 26년 만인 830년에 돌아와 쌍계사에서 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 이제 범패는 부처님 오신 날이나 발표회가 아니면 접하기 힘들어진 음악이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부 불교사찰에서 전통적인 음악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범패보다는, 화청, 회심곡, 탑돌이, 왕생가 등 민요풍의 불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음악을 접하고 있다.

 

맺으며

범패는 신라시대 우리나라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어, 고려시대 크게 번성하였고, 조선시대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우리나라 전통음악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1911년 사찰령으로 크게 쇠퇴하여 현재에는 문화재로서 간신히 보존되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과 함께 우리에게 평안함을 선사하는 범패는 계속해서 소중히 보호되고 이어져 나가야 할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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