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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음악

한국고전음악 판소리의 거장들(8명창)

by 짱똘이다 2023.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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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조선후기로 점차 대중적인 음악으로 성장하며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소리꾼들이 판소리의 발전과 유지에 기여했는데, 그중에서도 영조 이후 철종까지의 명창들을 소위 8 명창이라 칭하고, 고종 때의 명창을 5 명창이라 한다. 

아래에서는 영조부터 철종까지 판소리의 역사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8 명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판소리 이미지

영조부터 철종까지 8 명창

명창이란 판소리의 유파를 열거나 훌륭한 더늠을 만드는 등 판소리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붙인 존칭으로, 영조부터 철종까지 8 명창으로 권삼득, 송홍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7명과 주덕기 박유전, 황해천 세 사람 중 한 사람을 꼽는다. 아래에서는 7 명창과 박유전 명창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소리꾼이 되기 위해 가문에서 쫓겨난, 권삼득

원래 뿌리 깊은 선비집안 출신이었으나, 권삼득은 학문을 멀리하고 소리에만 열중하여 문중의 골칫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꾼이란 천대받는 천민의 직업이었을 진데, 하물며 양반 가문의 선비가 천민들이 부르는 판소리를 하고 다녔으니,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연유로  문중에서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그를 죽이기로 하였으나, 거적말이를 당하게 되었던 권삼득의 소원으로 소리 한 자락을 하게 되었는데, 그 소리에 감동한 문중의 사람들이 그를 죽이는 것 대신 파문하였던 것이다. 권삼득은 특히 '설렁제'를 만든 것으로 유명했는데, 설렁제는 씩씩하고 호쾌한 대목에 많이 쓰인다. 권삼득이 설렁제로 불러 유명해진 더늠은 '놀부 제비 후리는 대목'이나 , '심청가'의 뱃사람들 호기를 부리며 으쓱거리는 대목 등이다. 

 

동편제의 문을 연, 송흥록 

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3대 왕에 걸쳐 활약한 송홍록은 그 동생 송광록의 아들 송우록, 송우록의 아들 송만갑까지 3대가 조선의 판소리의 명창으로 불리는 특수한 가계를 가지고 있다. 8 명창 중 유일하게 가왕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데, 송홍록의 장기는 <춘향가>, <변강쇠타령>,  <적벽가> 등이었다. 특히 <춘향가>의 '옥중가'에서 '귀곡성'으 대단히 잘 불러서 그가 해당 곡조를 뽑으면  "찬바람이 으스스 불며 당장 귀신이라도 나타날 듯 듣는 사람의 등골이 서늘"했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뛰어난 송혹록은 그 성정이 대단히 고약하여, 일화가 하나 전해져 오는데 송홍록의 고수를 하고 있던 송광록이 형의 성정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었다가, 형 못지않은 명창이 되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다.

 

경드름제의 창시자, 염계달

경기도 여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염계달은, 우연한 기회에 판소리를 접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10년을 소리공부에 전념하게 된다. 글공부를 위해 충청도의 절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줍게 된 "장끼전"한 권이 그의 소리 인생의 시작이 되었는데, 이것으로 10년을 소리공부에 매진하여 후에 "경드름계"라는 본인만의 창법을 창시하게 된다. "경드름계"란  창법에 경기도의 토리가 짙게 반영되어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이를 만들 때, 서울 근교 장사치들의 외침소리, 맹인들의 점치라고 떠드는 소리 등 경기 말투를 근거로 만들었다고 한다. "경드름체"는 그 소리가 경기민요 가락처럼 시원하면서도 가곡조도 풍기기도 한다.   

 

적벽가의 대가, 모흥갑

타고난 성량이 풍부했던 모흥갑은 그 소리가 워낙 우렁차 10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통성으로 내지르는 우렁찬 호령조가 많은 적벽가는 성량이 풍부했던 모흥갑과 잘 맞아 그 소리가 실로 장쾌하였다고 전해진다.

 

탁월한 기지의 즉흥연주자, 고수관

학식과 문장이  8 명창 중 가장 뛰어났던 고수관은 현장에서 즉석으로 서화나 분위기에 어울리게 소리를 고쳐하여 좌중의 감탄을 자아내기로 유명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하는 <사랑가>의 유명한 대목이 바로 고수관이 짠 가락이다. 많은 명창들에게 사랑받았던 대목이지만, 이 사랑가의 더늠은 지금까지도 고수관의 더늠으로 불린다.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 신만엽

전북 여산 출신의 신만엽의 더늠으로 부르는 <수궁가>는 호소력 있는 애간장을 녹이는 창법으로 유명하고. <수궁가>와 <심청가>가 특기이다. '사풍세우'라 불릴 정도로 그의 노랫소리는 부드럽고 가벼웠다고 전해진다.

 

석화제의 대가, 김제철

석화제란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것으로, 우아하고 경쾌한 성음이 많이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수궁가에서 토끼화상 그리는 부분, 날짐승의 상좌 다툼 부분, 춘향가의 천자뒤풀이 부분등이 대표적으로 석화제로 불리는데, 석화제의 대가인 김제철은 대가임과 동시에 창시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문헌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언급되기도 해 아직은 의견이 분분하다. 

 

서편제의 문을 연, 박유전

동편제가 송흥록이라면, 서편제의 문을 연 것은 박유전 명창이다. 기교와 잔가락이 많고, 발림도 풍부한 서편제는 훗날 다시 동편제의 웅장하고 담대한 맛이 더해져  강산제가 되는데, 이것 또한 노년의 박유전이 만든 유파이다. 박유전은 목소리가 월등히 좋아 천구성이라는 절찬까지 받고,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하여 명창의 이름을 달게 되고, 이를 계기로 흥선대원군 앞에서 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때 "네가 천하제일 강산이다"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맺으며

앞서 언급한 8 명창은 조선 후기 판소리 발전과 유지에 큰 역할을 했으며, 각자의 창법과 특기로 판소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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